Back To Top

news
home NEWS ART
ART
'부티크 출판시대'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
2017.12.06
edit article
헤럴드디자인

   '부티크 출판시대'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

By 오누리 (스토리텔러)

충무로의 주 업종 중 하나는 인쇄물 관련 업종이다. 하지만 충무로의 인쇄공장들은 생기를 잃었다. 무엇보다도 ‘출판업계 불황’이 충무로를 강타했고, 불황은 장기화됐다. 또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미디어 기술이 빠르게 수용되면서 책을 손에 드는 인구가 급격히 떨어졌다. 장기 불황으로 내 집 마련을 하기 보다 이사를 자주하는 젊은이들에게 책은 오히려 경제적 사치로 다가오게 됐다. 이러한 시장 상황은 대형서점을 비롯해 영세한 동네 서점으로도 이어졌다. 수요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재고를 쌓아야 하는 물리적 부담과 경제적 손실이 시장을 더욱 위축시켰다. 특히 스마트 폰과 미디어 기술의 급격한 발달은 서점의 존재 이유를 무색하게 했다. 인공지능(AI) 등 기술 발전으로 출판 산업이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졌다.

그러나 이같은 전망을 빗겨가는 분석이 나왔다. 일본 저자이자 독립 출판인인 니시야마 마사코에 따르면 인터넷 발달과 DTP(desktop publishing)은 '1인 출판사'의 성장을 가능하게 만든 요인이다. 국내의 경우 비주류인 1인 출판사가 제작한 ‘언어의 온도’와 ‘자존감 수업’과 같은 출판물이 주류 시장에서 몇 십 만부 이상의 기록을 보여준 것이 그 예다. 출판 당시에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소셜 네트워크와 젊은 독자층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이같은 쾌거를 이뤘다. 이러한 현상은 대중의 소비심리를 읽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이에 필자는 국내에서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1인 출판'의 국내외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는 1인 출판사를 4명 이하의 출판 구성원들이 직접 기획, 필자 섭외, 원고 청탁, 편집, 교열, 디자인, 제본, 배본 및 유통과 홍보 등 출판의 전반적인 과정을 참여하는 행위의 대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국제표준도서번호 부여 여부를 떠나 독립 출판사와 1인 출판사의 구분은 여전히 불명확하지만 634콜렉티브, 말글터, 이와타쇼인은 1인 출판사를 정의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1. 634콜렉티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안내된 출판 구성원 수보다는 초과하는 인원이지만 작업 참여 범위와 콘텐츠의 성향은 분명 일인 출판의 특성을 띄고 있다. 다양한 국적인 7명의 구성원들이 모여 발간한 <시티 프로젝트>는 독립 출판사이기에 가능한 개성 있는 주제들로 마니아 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뉴욕에 위치한ICP (International Centre of Photography) 라는 교육기관에서 만난 7명의 동문들이 각자의 주거지역(뉴욕, 파리, 상파울로, 서울)과 관련한 알파벳 시리즈에 맞는 이미지를 제작하는 공통 프로젝트들을 발간한 책이다. 특히 다국적 구성원들의 참여는 다양한 유통 형식에 유연성을 더하고 있다. 지역출신들이 축제나 페어 참가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나간다. 흥미로운 독립 출판사의 위기 관리 방법 또한 눈 여겨 볼만 한다. 유통과정에서 수량이 적은 잡지를 국제 운송 편으로 보내는 것보다 해외 여행을 하는 친구들에게 배송을 부탁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는 것. 아직 이들은 국제표준도서번호를 부여 받지 못해 출판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만큼 그들이 누릴 콘텐츠의 자유와 실험성은 소수의 독자들의 갈증을 해소시키는 것만 확실하다.     

1.jpg<634콜렉티브가 각국에서 출간한 사진집 이미지; 사진 출처_634 콜렉티브 인스타그램>

2.언어의 온도, 말글터

앞서 소개한 1인 출판의 기적이라 불리는 ‘언어의 온도’을 출간한 곳이다. 이기주 작가를 대표로 작문, 교정, 교열, 인쇄, 유통, 배본, 마케팅 과정은 물론 책 디자인에도 참여하는 1인 출판사다. 1인이 출판의 전 과정을 직접 작업하는 대표적인 경우라 볼 수 있다. 그래서 해마다 출간하는 책은 고작 한 권 뿐이다. 그에게서 출판업계와 관련한 경력이라고 찾아 볼 수 없지만 기자 활동을 해온 그에게 ‘책 발간’에 관한 호기심은 당연한 귀결처럼 보인다. 오직 ‘취미’로 시작한 수년간의 출판과 관련한 독학이 전부였다. 하지만 준비만은 분업화 된 어느 출판사 시스템만큼 열정적이고 치밀했다. 쓴 글의 기간만큼 긴 퇴고 시간을 갖고 표지 색상과 디자인 기획과 확인 절차는 1년이란 물리적인 기간 혼자서 오롯이 감당해내기도 벅찰 만 하다. 하지만 그런 소요 기간과 에너지를 쏟을 만한 가치를 그는 설명했다. 전 과정을 참여하며 담을 수 있는 자신의 정체성이 독자와 만났을 때 진정성과 자신감을 잘 전달할 수 있는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고. 그런 자신감은 그가 적극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나설 최전방의 매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책을 읽어주는 작가처럼 라디오를 출연해 대중에게 ‘언어의 온도’을 천천히 알렸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직접 책 글귀를 읽어주는 동영상과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업로드하고 독자들의 호응에 피드백하는 그의 소통 능력이 책을 알리는데 결정적이었다. 여전히 그는 일인 출판의 과정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전에 발간했던 책도 덩달아 재조명 받고 있다.           

2.jpg<언어의 온도 표지 디자인에 관한 독자의 의견을 소통하는 이미지; 사진 출처_이기주 작가 인스타>

3. 학회의 전문 서적을 출판하는 이와타쇼인
일본의 출판사는 90% 이상이 1인 출판사들이 주를 이룬다고 전한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출판계의 불황을 맞은 일본은 90년대에 1인 출판의 붐이 일게 되었다. 그리조아 블로그(출판 관련 전문 컬럼 블로그)에 따르면 그 당시 ‘이와타쇼인’  역시 이와타 히로시가 1993년에 차린 1인 출판사이다. 그 역시 대형출판사에서 편집자로 20년을 보내다 그 당시 44세에 독립했다. 22년간 줄곧 도쿄 세야타의 주택가에서 825권이라는 책들을 발간했다. 여느 1인 출판사들이 갖고 있는 전문분야가 있듯 이와타쇼인 역시 그러했다. 특히 민속과 역사 분야에서 연구 결과와 관련한 발간 횟수가 중요한 반면 수익성(상품성)이 낮은 연구자들의 발간을 도운 것이 그의 경쟁력이었다. 오랜 기간 출판 업계에서 잔뼈 굵은 그는 이 분야가 규모가 크진 않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직원의 필요성보다 대인관계에 대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활동 반경 내에서 창출할 수 있는 수익에 만족하는데는 이 분야만큼 적합한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혼자 일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와타 히로시 역시 한 달에 4-5권을 출간하는데 한계를 느꼈는지 제작이나 재고관리를 외주로 돌렸다. 뿐만 아니라 학회에서 팔리는 책과 안 팔리는 전문서적들을 보면 노력에 대한 희로애락이 교차한다고. 그래서 그는 베스트셀러가 된 전문 서적을 전면에 내세워 욕심을 내는 것을 더욱 경계하고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제목 없음.jpg

<이와타쇼인의 대표 이와타 히로시의 주택 출판사의 모습(왼)과 학회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3권의 책 ; 사진 출처_그리조아 블로그>

미디어 역시 콘텐츠의 대량생산과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고 공감하는 한계가 가치관의 획일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걸 대중들은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띈 1인 출판사의 신선한 콘텐츠와 직접 소통이 동네 서점과 공생관계를 만들어가며 문화거점지로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출판 경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이기주 작가 외에 아직 출판업계의 창업은 사실 여전히 불모지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 미국, 대만과 같은 앞선 출판 업계의 박람회, 전시회에 참여하고 업계 종사자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철저한 준비와 전략적인 비전을 준비해야 한다. 또한 지속 가능한 1인 출판을 위해 업계에서의 품앗이 환경 토대를 마련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share
LIST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