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디올의 로고 서체를 아시나요
By 홍연진 (스토리텔러)
PPT를 만들 때, 주제와 내용에 맞는 폰트만 잘 골라도 절반은 성공했다는 말이 있다. 편집 디자인을 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서체이다. 사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보는 모든 텍스트는 특정한 서체로 이루어져 있다. 하물며 네 글자로 이루어진 기업 로고도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 서체가 품고 있는 분위기, 텍스트의 내용에 집중하다보니 어떤 서체를 사용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각각의 서체에도 이야기가 있는데 말이다. 기업 로고, 잡지의 이름으로 자주 보았지만, 잘 알지 못했던 서체들의 탄생 배경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1. 푸투라(Futura), 고전적이면서도 진보적인 서체
<사진=Wikimedia Commons>
루이 비통의 로고는 ‘푸투라(Futura)’라는 폰트로 되어 있다. 이 폰트의 특징은 O가 거의 동그랗고, V와 N의 끝이 유난히 뾰족하다는 것이다. 푸투라체는 1927년 독일의 북 디자이너이자 교육자인 파울 레너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이 서체의 이름은 '미래를 지향하는'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20세기 모던 디자인 운동, 특히 바우하우스와 관계가 깊다.
바우하우스는 1919년부터 1933년까지 '예술과 공예의 조화',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제창하며 운영되었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지식이 있는, 논리적인 디자이너를 양성하고자 했다. 이러한 디자인 교육 방향과 재료 및 언어의 실험은 상당히 진보적이었다. 푸투라체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바우하우스의 타이포그래픽 공방 교수였던 헤르베르트 바이어가 디자인한 유니버설(Universal)이라는 실험적 서체였다. 유니버설체는 원에서 나올 수 있는 곡선과 이를 연장한 직선만을 이용하여 만든 서체로 이를 발판 삼아 기존의 조형 양식을 벗어나 대량 기계 생산 채제에 적합한 새로운 조형 언어가 등장하게 되었다.
파울 레너는 바우하우스와 유니버설체의 영향을 받아 원, 삼각형, 사각형을 기본 꼴로 한 기하학적인 형태의 서체를 만들었다. 푸투라체와 함께 1920, 30년대에 등장한 기하학적인 산세리프(Sans Serif) 서체들로는 카벨(Kabel), 에르바(Erbar), 메트로(Metro) 등이 있다. 산세리프는 활자를 구성하는 획의 끝 부분에 돌출한 작은 획인 ‘세리프(Serif)’가 없는 서체들을 말한다. '산(sans)'은 프랑스어로 영어의 ‘without’의 의미를 갖는다. 획의 굵기가 일정하고, 글자 폭의 차이도 크게 두드러지지 않으며, 획이 잘린 부분이 수직 혹은 수평으로 일관되기 때문에 상당한 안정감을 준다. 이 서체군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톤을 지니고 있어 오랫동안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장식을 모두 거둬낸 기본 글꼴이 주는 아름다움과 고전적 서체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낸 변화가 바로 그 특징이다.
<사진=(좌) 픽사베이, (우) 돌체 앤 가반나 공식 홈페이지>
그 중 푸투라체는 루이 비통뿐만 아니라 자동차 제조 회사인 폭스바겐(Volkswagen)의 기업 서체로도 활용되었다. 다시 루이 비통 이야기로 돌아가면 루이 비통의 로고는 푸투라 미디엄체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글자와 글자 사이의 간격에 변화를 주어 안정감과 신뢰감을 더했다. 반대로 돌체 앤 가반나는 기업 로고를 만들 때 동일한 푸투라체를 활용했지만, 그 간격을 최대한 좁혀 놓았다. 중후한 분위기보다는 젊고, 밝은 느낌이 들도록 연출한 것이다. 이로써 서체 선정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이미지에 맞게 간격을 조정하는 일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니콜라 코생(Nicolas Cochin), 사교계의 품격을 담은 서체
<사진=Wikimedia Commons>
루이 비통의 로고는 로마 제국 시대에 돌 위에 끌로 새긴 대문자 비율로 되어 있다. 하지만 비문을 따라하지 않고, 또 다른 형태로 품격을 연출한 서체가 있다. 우리가 흔히 '고급스럽다', '품격 있다'라고 말할 때, 떠오르는 서체들은 일반적으로 동판인쇄 양식의 글자에서 비롯된다. 동판인쇄는 평판인쇄의 한 종류로 평평한 동판에 조각도로 얇은 선을 새겨서 그 홈이 채운 잉크를 기계로 종이에 옮기는 것을 말한다. 18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초대장, 명함 등의 사교계 인쇄물을 동판인쇄로 유행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동판인쇄 계열의 서체들이다.
<사진=픽사베이>
디올의 로고는 동판인쇄 계열 서체 중 하나인 니콜라 코생(Nicolas Cochin)을 활용하여 만들어졌다. 니콜라 코생체는 두꺼운 곳과 얇은 곳에 차이를 준 대문자와 소문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리프가 가늘다. 앞서 살펴보았던 푸투라체와 비교하자면 니콜라 코생체는 철저히 디자인되었다고 말하기 어렵고, 동판에 새기는 과정 속에서 탄생한 서체라고 볼 수 있다. 디올의 로고는 창립 이래로 서체에 어떠한 변화도 주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
3. 보도니(Bodoni),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서체
<사진=Wikimedia Commons>
오늘날 많은 패션 잡지가 동판인쇄 계열의 서체를 활용하고 있다. 그 중 《보그(Vogue)》는 1950년대부터 계속해서 해당 로고를 유지하고 있다. 1800년 전후 프랑수아 디도(François Didot)가 만든 서체 디도(Didot)가 기준이 되었다. 이후 이탈리아 서체 디자이너가 만든 활자인 보도니(Bodoni)를 미국인 디자이너가 현대적인 감각으로 디지털 폰트화하여 활용했다. 디도체와 보도니체를 아울러 디돈(Didone) 양식이라고 일컫는다. 가는 가로획과 굵은 세로획이 세리프 없이 직각으로 만나고, 글자의 모양이 기하학적 형태에 바탕을 두며, 비례가 수학적으로 고려된, 펜글씨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진 서체 양식이다. 글자 하나 하나가 개성적이지는 않지만, 가는 곳을 굉장히 가늘게 표현해서 섬세함을 드러냈다.
<사진=Wikimedia Commons>
당시 인쇄술이 크게 발달하면서 머리카락만큼 가는 세리프와 굵은 획이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는 보도니(Bodoni)가 탄생할 수 있었다. 보도니체는 강한 시각적 인상 덕분에 제목용 서체로 큰 사랑을 받아왔지만, 활자의 굵은 대비가 눈을 피로하게 만들어 본문용 서체로 사용하기에는 적합지 않았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많은 폰트 회사들이 새로운 버전을 내놓았으나 기존의 아이덴티티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사진=(좌) Flickr, (우) Flickr>
《보그(Vogue)》뿐만 아니라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의 아트 디렉터인 알렉세이 브로도비치(Alexey Brodovitch)도 보도니체를 사랑했다. 그는 1934년부터 1954년까지 사진 이미지, 서체, 여백에 있어서 혁신적인 지휘를 하면서 잡지 디자인의 수준을 크게 향상시켰다. 특히 여백과의 강한 대비를 위해 보도니체를 타이포그래픽 디자인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 외에도 서체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헬베티카(Helvetica), 프루티거(Frutiger) 등이 있다. 헬베티카체의 경우 독일 루프트한자항공사, 로스앤젤레스 공항, 런던 대관람차 ‘런던 아이’,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펜디(FENDI) 등에서 사용되면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이처럼 많은 서체들이 오랜 역사 속에서 삶과 문화에 녹아들었다. 오늘날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디지털화한 폰트를 사용하면서 서체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때로는 기업 고유의 서체가 강력한 브랜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 사소한 디자인 작업을 하더라도 서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신중을 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 참고문헌
고바야시 아키라, 이후린, 『폰트의 비밀』, 도서출판 예경, 2013
김현미,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33가지 서체 이야기』, 세미콜론,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