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의 쉼표
By 오누리 (스토리텔러)
이번 해(2017년) 총 137개국 34만 4000여명의 관람객이 찾은 밀라노 최대 규모의 디자인 박람회장에 변화가 생겼다. 특히 가구분야에서 전시의 규모 뿐만 아니라 전시 부스의 콘텐츠를 구성 측면에서 그 비율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클래식, 모던, 디자인으로 부스의 특성을 나누었던 작년과 달리 모던 부스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디자인 부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전했다. 이는 소비자들이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관점을 이전과 달리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모던 부스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줄어들고 실험적인 제품들에 그 시선이 옮겨갔다는 걸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모더니즘의 종말이라는 극단적 진단은 금물이다. 다원성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메가 트렌드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 뿐. 메가 트렌드를 생성하는 패션 분야에서 조차 그 순환의 주기가 짧아지고 주류와 다양한 세대와 취향을 따라가기 위한 다양한 믹스 매치 아이템들을 제안하고 있다. 이런 모더니즘의 쉼표 현상은 산업과 관련한 모든 디자인 분야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번 기사에서 패션과 산업 디자인을 통해 대표적인 두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러시안 해체주의, 고샤 르부친스키
패션 스타트 업의 성공으로 그 유명세를 떨친 인물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뎀나 바잘리아’ 다. 대부분 그를 기억하겠지만 ‘러시아발 유스 컬쳐’ 를 부활 시킨 또 다른 주역 ‘고샤 르부친스키’는 아직 ‘뎀나 바잘리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적이지 못한 이름이다. 2016년 S/S베트멍 컬렉션에서 DHL 택배 로고가 박힌 후드티를 입고 나온 모델을 기억하는가. 바로 그가 ‘고샤 르부친스키’다. 1985년 러시아 출생인 그는 패션을 기반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영화 제작자 겸 포토그래퍼)하고 있다. 그의 유년시절이었던 ‘포스트 소비에트’에 대한 향수가 주된 그의 영감으로 패션에 반사회주의 기류를 표현했다. 문화적 혼란기를 겪으면 형성된 고샤의 해체주의적 감성은 특히 스포츠웨어와의 콜라보에서 빛을 발했고 20-30대들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게 됐다. 바지의 헴라인의 거친 마감이나 늘어난 듯한 셔츠, 슬로건과 로고를 활용한 패턴(로고 플레이)들로 러시아 거리의 청년들을 연상케 했다. 고샤의 이런 해체주의적 감성이 녹아 든 패션이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반항심을 대변한다는 소견이 지배적이다. 그의 이런 시도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이번 2018년 럭셔리 브랜드 버버리와의 협업 ‘디컨스트럭션(Deconstruction)’ 통해 알 수 있다. 로고를 숨기며 버버리의 모던함을 강조해 성공을 거두었던 과거와 달리 버버리의 시그니처 아이템인 트렌치 코드, 헤링턴 자켓, 반소매 셔츠, 반바지 등을 전면에 내세워 체크 트리밍을 넣어 해체주의적 아이템 매치를 선보였다. 이는 모던함과 클랙식만으로 더이상 젊은 소비자들의 기억 속에 브랜드가 남게 될 정체성 한계를 느끼고 스스로 권위를 해체한 것이다.
<2018고샤 르부친스키 컬레션(왼)과 버버리와의 콜라보(오);사진출처_힙합플 매거진(왼,) 버버리(오) >
2. 인테리어계 초현실주의, 리 브름
패션 분야의 커리어를 지닌 리 브름은 리빙 페어에서 주목받는 디자이너 중 하나다. 그의 명성은 이미 크리스티앙 르부탱, 멀버리와 같은 브랜드들과의 콜라보 러브콜이 말해주고 있다. 특히 이번 해를 접어들면서 디자이너 활동한지 10주년을 맞아 20년간 방치되었던 밀라노 센트럴 역 부근 동글 안에서 보인 그의 초현실적인 설치 퍼포먼스는 수많은 이목을 끌었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의 초현실적인 감성과 아티스틱한 결과물들은 스타일만을 생각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재와 기술과 관련된 제조과정에 대한 도전에서 비롯된다고 전했다. 이러한 면모를 그는 크리스털, 대리석, 황동과 같이 가공이 까다로운 소재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엿볼 수 있다. 빛의 투과율이 낮은 대리석을 얇게 가공해 조명을 사용할 생각을 누가 하겠는가. 또한 크리스털 샹들리에(조명)는 단면 하나하나가 장인의 손에 의해 가공되어 조명의 반사와 굴절되는 빛은 예술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수공예에 대한 그의 신념과 디자인 비전이 소비자에게 인정받는 모습은 19세기 미술공예운동을 상기시킨다. 기계만능주의 확산에 대항하여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공예 가구를 실천에 옮긴 모리슨의 정신이 다시 살아 숨쉬고 있다. 소비자들 역시 생산자 중심의 천편일률적인 가구와 리빙 제품으로 자신의 공간을 채우는 것을 거부하고 차별화된 자신의 모습을 공간에 투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르 브룸의 밀라노 디자인 페어 퍼포먼스(위)와 대리석 튜브 전등(아래왼), 크리스털과 청동 작품들(아래로);사진출처_리 브룸 인스타 >
이들의 공통점은 서툴러도 인간미가 묻어나는 과거에 대한 향수라는 것이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저항 정신을 대변하는 디자이너들과 스타일들이 점점 설 자리가 늘어가고 있다. 즉, 대량생산과 기계만능주의로 인간의 가치를 대체하는 풍조에 저항하는 행위를 디자인과 소비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모더니즘의 쉼표는 조화로운 라이프 스타일의 전주를 위해 필요한 주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