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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미술 개론서는 ‘움직이는 미술관’…미술한류를 향한 도약”
202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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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디자인

취임 3년…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인터뷰

유연한 사고ㆍ도전과 실험으로 일군 변화

 

MZ세대가 사랑하는 미술관

소외된 장르 부활ㆍ실험적 전시

전문임기제 정원화로 조직 안정

이건희 컬렉션ㆍ소장품 1만점 시대 성과

3년 공들인 한국근현대미술 개론서 발간


“한국미술 자존심 찾고, 미술한류 본격화”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국내 미술관으로는 최대 수치인 인스타그램 팔로워 17만명. 세계적인 K팝 스타 방탄소년단의 RM이 즐겨 찾고, 가수 씨엘이 영감을 얻는 곳. 발길이 닿는 장소마다 ‘포토존’이니, 금세 MZ(밀레니얼+Z)세대들의 ‘핫 플레이스’로 부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마당엔 SNS에서 튀어나온 인플루언서들이 거닐다가, 통창 아래에서 가을빛을 맞으며 쉬어간다. 부쩍 젊어졌고, 생동감이 넘친다. “미술관은 신전이 아닌 문화공간이자 지적 놀이터”여야 한다는 윤범모 관장의 생각이 국립현대미술관의 변화를 불러온 계기였다. 오가는 사람만이 아니다. 미술관은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했다. “예술은 고정관념에 대한 끝없는 도전”이라는 수장의 신념은 미술관 전체에 신선한 바람이 됐다.

 

개관 50주년을 맞는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에 부임한 윤범모 관장이 강조한 목표는 두 가지였다. ▷ ‘이웃집 같은 미술관’으로의 도약, ▷ ‘한국미술의 자존심’ 살리기. 목표로 나아가는 추동 엔진이 된 건 유연한 사고였다.

 

“현대미술은 변화무쌍하기에 사고방식이 고여 있으면 안돼요. 작가도, 미술관 운영자도 울타리를 부수는 도전과 실험정신이 필요해요. 궁극적으로는 미술이라는 매개체로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을 사는데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3년차에 접어든 현재, 윤 관장의 ‘취임 공약’은 가시적인 성과로 나오고 있다. 2030 세대가 가장 많이 찾는 ‘놀이터’가 됐고, 온라인 10대 미술관에 이름을 올렸으며, 소외된 장르를 끌어내 균형있는 미술전시를 도모했다. 개관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한 한국 근현대 서예전(2020년 3월)이 대만 시립미술관으로 수출됐다. 전문임기제 정원화로 조직이 안정됐고, 기관장 직위가 2급 국장급에서 1급 차관보급으로 오른 것도 주목할 점이다. ‘이건희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소장품 1만점 시대를 연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이를 통해 기증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생겨났다는 평가다. 최근 발간한 한국 근현대미술 120년사를 조망한 개론서 ‘한국미술 1900-2020’은 취임 3년차의 대업이다.

 

윤 관장의 성취는 하나의 ‘일관된 방향’을 향하고 있다. ‘미술한류를 향한 꿈’이다. “한국미술의 국제적 경쟁력을 높여 K-아트의 선봉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가 미술관 안팎의 혁신을 이끌었다. 취임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윤 관장을 만나 국립현대미술관의 성과와 과제,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취임 이후 절반 이상은 팬데믹과 맞물렸음에도 국립현대미술관은 다방면에서 새로운 도약을 이끌었습니다. 취임과 함께 내세웠던 국립현대미술관의 방향성은 무엇이었나요.

 

▶ 미술관에 부임한 첫해 봄에 서울관을 관람한 외국인이 “왜 국가대표 미술관에서 한국 작가의 그림이 없냐”고 물었다. 공교롭게도 전시 일정이 그렇게 짜여 있었던 것인데, 부끄러웠다. 그래서 ‘한국미술의 자존심을 찾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서양미술은 우리가 챙기지 않아도 전 세계에서 챙길 사람이 많지만, 한국미술은 우리가 아니면 챙길 사람이 없다. 이것이 우리의 역사이고, 실체인 만큼 ‘우리 미술의 현주소’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생각으로 전시에 있어 장르간, 시대간 균형을 체계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봤다. 5년 간의 전시목록을 분석하니 대여섯 가지 빠진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묵화, 채색화, 서예 등 한국 전통 바탕의 전시와 공예전, 디자인전, 리얼리즘전, 지역작가 전시 등 소외된 장르가 나왔다. 임기 중엔 화려한 것이 아닌 빠진 것을 채워 ‘균형감각’을 맞추고, 한국미술의 자존심을 찾는 데에 일조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꿨다. (웃음)

 

- 취임 일성으로 내건 ‘한국 근현대미술 개론서의 발간’은 3년의 시간이 걸려 ‘한국미술 1900-2020’ 국문판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개론서 발간의 필요성은 어디에서 찾게 됐나요.

 

▶ 내부적으로는 ‘연구하는 학예실’을 만들겠다는 당위, 외부적으로는 해외에 한국미술을 알릴 영문판 개론서의 필요성이 나왔다. 그런데 영문판 개론서도 없었지만, 국문판으로도 한국 근현대미술을 제대로 조망한 통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당시 통사를 출판하겠다고 하니 안팎으론 “미술관이 대학연구소냐”는 비판도 있었다.

 

작업도 어려움이 많았다. 한국 근현대미술사 연구는 현대사와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분단 등의 정치적 사건과 한계를 안고 수행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다. 균형 있는 집필을 위해 다양한 필진을 구성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속의 학예연구사뿐 아니라 분야별 근현대 미술 전문가 20여명을 포함해 총 34명이 집필에 참여했다. 많은 사람이 함께 한 만큼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끊임없는 토론을 거쳐 결론을 만들어갔다. 무엇보다 어려운 점은 도판이었다. 책에는 400점 이상의 작품이 들어가는데, 일일이 저작권 사용 승인을 받아야 하다 보니 애로사항과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 과정은 말할 수 없이 허우적 댔고, 굉장히 지난하고 복잡했다.

 

 

- 500쪽이 넘는 방대한 ‘한국미술 1900-2020’을 구성할 때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가장 비중을 둔 부분은 목차다. 시대, 장르 구분과 시대별 특징, 의미 부여 작업이 이어졌다. 1부는 19세기~식민지 해방, 2부는 분단시대, 3부는 근대화, 4부는 1980년대 미술, 5부는 1990년대 이후로 구성하게 됐다. 여기에 용어와 개념을 새롭게 정리하는 과정을 거쳤다. 동양화, 서양화 등의 전형적인 식민지 용어 대신 새로운 용어를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당대 미술, 동시대 미술의 비중이 크다. 도판에서도 현역 작가, 젊은 작가들을 많이 소개했다. 이 책의 출간 목표는 한국 현대미술을 알려 제대로 평가받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활동하는 현역 작가들을 가급적 많이 소개하려 했다. 이에 더해 여성미술, 환경 등 새로운 담론에 비중을 뒀고, 전 세계에선 찾아볼 수 없고 우리에게만 존재한 1980년대 미술운동도 소개했다.

 

- 한국 근현대미술의 중요한 변화와 그 변화를 이끈 변곡점은 언제라고 봤나요.

 

▶ 한국 근현대미술은 질곡의 시대를 보냈다. 20세기 전반부는 식민지의 시대이고, 중반부는 한국전쟁, 후반부는 분단 시대로 볼 수 있다. 근현대미술사에서도 식민지와 전쟁, 분단은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그 중 20세기 전반부는 서구미술을 수용하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시기다. 이전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서화의 시대에서 미술의 시대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조선왕조만 해도 ‘글씨와 그림은 한 몸’이라는 ‘서화동체’ 사상이 기반했다. 당시의 그림은 자기 수양의 방편이었지, 감상용의 개념이 아니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며 미술은 감상용 작품으로 변화했다. 시각 현실의 변화는 익숙한 생활용품을 감상용품으로 바꿨고, 감상용품은 고가의 미술품이 돼 미술관이라는 전시장 문화가 생겨나게 됐다. 이를 통해 미술의 전문화, 세분화가 나타났다.

 

- ‘한국미술 1900-2020’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 굴곡 많은 한국의 역사는 한국 현대미술에도 투영됐다. 지정학적으로 외세의 영향이 많았다. 이 땅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자주성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썼고, 이들은 그런 시대상을 작품으로 승화했다. 한국의 미를 한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그럼에도 한 단어로 말하자면 ‘무애(無碍)’라는 용어를 들고 싶다. 신라시대의 고승으로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인 원효는 무애론을 바탕으로 저잣거리에서 무애의 노래와 춤을 알렸다. 그 안에 담긴 ‘거리낌이 없는’ 경지, ‘무애미론’은 한국미의 핵심과 상통해 다양한 미술세계로 연결됐다. 형식이나 격식에 속박되지 않는 시도, 자유에 대한 갈망과 그리움, 그 안에 신명나는 역동성이 담겼다. 이는 지금의 ‘다이내믹 코리아’와 이어진다.

 

 

- 한국 근현대미술을 아우른 개론서의 출판이 가지는 의의와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내년 상반기 영문판이 나오면 국제 무대에 이 책이 보급돼 한국미술을 알리는 큰 역할을 하리라 본다. 이 개론서는 그 자체로 ‘움직이는 한국 미술관’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이 수천, 수만 군데에 생길 예정이다. (웃음)

 

지금의 한국 문화는 만들기만 하면 국제 무대로 향할 만큼 뛰어나다. 방탄소년단(BTS), ‘오징어게임’, ‘기생충’ 등 대중문화가 불러온 한류로 국격이 상승했다. 이제는 순수예술도 한류의 흐름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은 미국 뉴욕, LA는 물론 독일 중국 일본 등지에서 한국미술 특별전을 열 예정이다. 본격적인 ‘미술한류의 원년’이 되는 해다. 이에 발맞춰 ‘한국미술 1900-2020’이 미술한류의 전령사로 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 생각한다.

 

- 지속가능한 미술과 미술한류를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 장르별, 세대별, 개념별 작가를 발굴해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을 조명하고, 국제무대에 소개해 발탁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성과를 곧 볼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또 작가들을 적극적, 체계적으로 후원하는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 역시 내년부터 본격화될 것이다. 작가는 물론 ‘스타 큐레이터’의 발굴도 중점을 두는 부분이다. 스타 큐레이터가 국제무대에서 활동할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선 외국 전시와 공동 기획자로 참여하고, 해외에서 활동하도록 겸직도 열어주고 있다. 국제 교류는 쌍방 통행이 원칙이다. 이젠 주고받아야 한다. 국제 무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우리 미술의 중심을 잡고, 하나의 역할을 해나가는 토대를 만들고 있다. 이를 통해 ‘미술한류’, ‘한국미술의 자존심 찾기’가 완성되리라 본다. 그것이 국립현대미술관의 과제다.

 

shee@heraldcorp.com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21110300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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